팔순 노부부에게서 절절하게 느껴졌던 남편과 아내의 소중함은 마라톤 같은 인생길이 준 더할 나위 없이 멋진 선물

▲ 사진=이주옥 기자

종로구 청운동 북악산 밑자락을 찾아가던 날은 간간이 이슬비가 흩뿌렸다. 이슬비 속에 초록이 유달리 진하던 날, 팔순을 넘기신 연세에도 불구하고 각종 마라톤대회 참가 500회를 달성한 노부부의 모습은 그 푸름만큼이나 성성했다. 그날 대면한 양만석, 김정자 씨 부부는 북악산 밑자락의 푸름을 온통 차지한 듯 곱고 꼿꼿했으며 물리적인 나이가 무색한 청년의 모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청바지 차림의 준수한 외모의 남편 옆에는 여릿하면서도 다소곳한 아내가 나붓나붓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노부부의 금슬은 이미 소문난 부분이었으니 잔잔하게 흐르는 애정 전선은 에둘러 확인하고도 남았다. 지은 지 41년 됐다는 부부의 아지트를 들어서자마자 잔디 정원 펜스에 걸린 현수막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1남 5녀의 자녀들이 부모님이 거둔 각종 마라톤대회 500회 달성을 축하한 흔적이 싱그러운 바람에 조붓이 흔들리고 있었다.

양만석 씨는 올해 연세 86세이며 부인 김정자 씨는 81세다. 양만석 씨는 청주상고를 졸업 후 중앙대학교를 마치고 공인회계사와 세무사로 사회에 발을 디뎠다. 이후 대한석탄공사, 영남 화학 등에서 원가회계를, 증권감독원 전신인 한국투자공사에서 증권분석가로 활동하며 우리나라 경제 실무에서 맹활약한 경제와 금융의 베테랑이다. 그 밖에도 유수의 금융 관련 회사에서 재임하다가 18년간 한국투자공사(현 금융감독원)에서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우리나라 경제지표를 평가하고 결정하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퇴임 후에도 한국증권연수원 강사를 비롯해 공인회계사 시험위원과 대학 강단에서 실무로 얻은 이론을 강의하는 등 전공을 통한 자신의 지식과 능력을 곳곳에 나눔 하며 제2의 인생에서도 빛나는 금자탑을 새겼다. 그의 이런 활동과 능력은 대통령에게 산업포장을 수상하는 영광으로 이어졌으니 한 사람의 인생 이만하면 충분할 터이다.

 

양만석 씨에게 운동의 시작은 등산이었다고 한다. 매일 연속되는 격무와 잦은 술자리는 그에게 체력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웠고 주말마다 오르는 산은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날리기에는 최상이었으리라. 그러다가 66세 되던 지난 2002년 영국전자 김배훈 사장님에게 마라톤에 대한 긍정적인 효과를 듣게 됐고 10km 구간을 달리게 됐다고 한다. 그간의 꾸준한 등산이 워밍업이었을까. 엉겁결에 뛰게 된 마라톤 10km 구간이 의외로 부담스럽지 않았고 이후 마라톤의 매력에 푹 빠졌다. 또한 김배훈 사장님에 대한 고마움도 잊을 수 없다. 거기에 아내 김정자 여사까지 합류하게 됐으니 마라톤은 그에게 인연을 넘어 필연이 아닐 수 없다. 결국 71세 되던 해에는 100km에 도전해 14시간 24분 만에 목적지인 천안 독립기념관에 당도하는 기염을 토했다. 어떻게 보면 다소 싱거운 마라톤 입문기였지만 그 작은 시작은 오늘의 최고령 마라토너 부부를 만든 단초가 됐고 국내 대회는 물론, 보스턴, 동경 대회 등 다섯 차례의 해외 대회 출전으로까지 확장됐다. 노부부의 이런 과정들은 전국 최고령 부부 마라토너 상 등 6차례의 수상이 확실한 격려와 응원이 됐으며 현재도 5개의 단체에서 젊은이들과 어깨를 겨루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바야흐로 100세 시대에 가장 바람직한 노년의 모습이고 모두가 꿈꾸는 아름다운 부부 해로다.

양만석 씨는 마라톤을 하는 이유 첫 번째로 ‘건강을 위해서’라고 한다. 또한 ‘달리는 것에서 즐거움을 얻기 때문’이다. 마라톤뿐만 아니라 무슨 일이든 즐거움을 바닥에 까는 일이 얼마나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오는지 여실히 확인되는 일이다. 그는 “많이 뛰고 길게 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언제까지 즐겁게 뛰느냐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말은 인간 수명 120세를 향하는 시대에 대한 우리가 모두 귀담아들어야 할 엄중한 제시이며 지혜로운 인식이 아닐 수 없다.

양만석 씨는 인터뷰 내내 아내 사랑을 표현했다. 60여 년 그를 뒷바라지하고 마라톤이라는 고독한 운동에 늘 함께 나란히 달려주는 아내가 그를 권력과 금력의 한가운데에서 어떤 과오도 없이 무사히 퇴직하게 한 바탕이었으리라. 양만석 씨는 자신의 인생이 비교적 성공적이라고 말한다. 아마도 욕심이 없는 성정이 그를 실패하지 않게 하고 어떤 길에서도 흔들리거나 넘어지지 않게 하는 원동력이었으리라. 부부에게는 1남 5녀의 자녀들이 있다. 건강한 신체와 건강한 정신, 그런 결과인 건강한 자녀들을 둔 다복함까지 다 가졌다. 또한 자식들에게는 이런 건강한 부모야말로 가장 멋진 유산 아니겠는가.

마라톤이란 원래 자기와의 싸움이 필요한 운동이다. 부부는 일주일에 두 번은 연습 달리기를 한다. 땀 흘리며 달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맞은 시원한 바람은 무엇과도 비교 안 되는 삶의 윤활유며 중독성 있는 즐거움이다. 또한 이 와중에 떠오른 멋진 시구들은 그의 마라톤 인생을 대변하는 10곡의 노랫말로 탄생했고 급기야는 박남춘 작곡가에 의해 CD로 만들어졌다. 이에 160여 차례 노래 봉사까지 하고 있으니 이래저래 마라톤은 그의 인생 절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0여 년 넘은 부부의 길도 마라톤 같았으리라. 때때로 다가드는 삶의 곡절에는 일정한 호흡과 밸런스도 필요하고 질량에서 오는 페이스 조절은 필수였을 터, 이에 물리적인 거리를 부부가 함께 꾸준히 달려 작년 12월, 각종 마라톤대회 500회 달성을 했으니 누가 감히 그들 인생에 태클을 걸겠는가. 팔순 노부부에게서 절절하게 느껴졌던 남편과 아내의 소중함은 마라톤 같은 인생길이 준 더할 나위 없이 멋진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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