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저널 그날’ 고종 비애를 담은 러일전쟁 ‘이토 히로부미’ 숨겨진 이야기

기사승인 2018.11.18  21: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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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고종의 비애를 담은 러일전쟁 이토 히로부미 승부수

[코리아데일리 정은채 기자] 18일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고종의 비애를 담은 러일전쟁의 숨겨진 이야기가 주목을 끌고 있다.

러일전쟁 D-6개월 고종, 러시아에 밀서를 보내다 1904년 2월 8일, 뤼순 항에 정박해 있던 러시아 군함이 일본군함의 기습공격으로 격침된다.

하루 뒤, 인천 앞바다에 있던 러시아 군함도 일본군함의 공격을 받는다. 선전포고 없이 잇달아 진행된 일본군의 공격은 러일전쟁의 신호탄이었다. 일본군이 러시아를 공격하기 6개월 전, 고종은 러시아 황제에게 밀서를 보낸다.

   
▲ 역사자날 그날 제작모습 (사진출처 역사저널 그날 제작팀 제공)

러시아의 승리를 확신한 고종의 밀서. 그러나 전황은 고종의 예상과는 다르게 일본 쪽으로 유리하게 전개되는데...러일전쟁의 소용돌이 속 대한제국의 운명은?

러시아의 승리를 확신한 건 고종뿐만이 아니었다. 전 세계가 러시아의 압승을 예상했다. 영국에서는 러시아가 일본을 며칠 만에 이기냐를 두고 내기 도박판이 벌어졌을 정도. 실제로 전력 면에서 러시아와 일본의 격차는 컸다.

러시아 육군은 일본 육군보다 5배 이상 많았고, 해군 전력도 발틱함대를 보유한 러시아가 더 유리한 상황이었다. 서양 열강이 러시아의 승리를 예상한 건 러·일 간 전력 차이뿐만이 아니었다? 전쟁이 발발하던 20세기는 인종주의적 시각이 만연하던 시기. 동양국가를 야만국으로 보던 서양 국가들은 문명국인 러시아가 당연히 승리할 것이라 예상했다.

일본은 청일전쟁 승리로 얻은 요동반도를 다시 반환한다.

배후는 삼국간섭을 주도한 러시아. 일본은 러시아를 향해 복수의 칼을 간다. 청일전쟁 전보다 예산을 9배 더 늘려 편성한 일본은 전쟁자금을 지원해줄 나라가 필요했다. 그러나 모두가 러시아의 승리를 예상해 자금을 지원해 주지 않던 상황.

이토 히로부미는 전쟁 자금을 지원받기 위해 미국에 사신을 파견하여 자금을 받는데 성공한다. 러시아의 승리가 당연시 되던 상황에서 미국이 일본에게 전쟁자금을 지원해준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은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고 있었던 영국과 동맹을 체결한다. 이 영일동맹은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게 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는데...

아관파천 이후 고종은 자주적인 광무개혁을 실시한다. 전운이 감돌자 고종은 대한제국의 중립을 선언한다. 그러나 고종의 중립선언은 묵살되고, 러일전쟁이 발발하면서 그의 개혁은 수포로 돌아간다.

전쟁 후 러시아와 일본이 체결한 포츠머스 조약에는 대한제국에 대한 일본의 감독권을 인정하는 조항이 담긴다! 터무니없는 강화조약의 중재자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대통령. 한반도에서 일본의 우위권을 인정한 이 강화조약을 중재한 공로로 루스벨트는 ‘노벨평화상’까지 챙기는데...

20세기 세계사의 권력구도를 바꾼 러일전쟁의 전말은 11월 18일 일요일 밤 9시 40분 KBS 1TV ‘역사저널 그날’ ‘러일전쟁 D-6개월 고종, 러시아에 밀서를 보내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자료제공 역사자날 그날 제작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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