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죽거리 잔혹사 ‘영화 감상 포인터’ “첫사랑 소녀는 지금 어떻게 지낼까?.”

기사승인 2018.01.14  18:4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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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죽거리 잔혹사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코리아데일리 곽지영 기자]

말죽거리 잔혹사가 14일 밤 네티즌 사이에 화제다.

잉 영화는 사랑은 중독이다. 힘들어 하면서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 중독성에 있다.

영화 속 주인공 현수와 은주 역시 힘든 사랑을 선택했고, 지키려 노력했다. 현수는 버스에서 우연히 만난 이웃여고생 은주를 사랑하게 된다. 은주는 현수의 친구인 학교짱 우식을 마음에 둔다. 은주의 마음을 알면서도 그녀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못하는 현수. 아니, 오히려 그의 사랑은 난관에 부딪쳐 더 강하게 불타 오른다.

   
▲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스틸과 포스터 (사진 코리아데일리 DB)

힘든 사랑을 하는 건 현수와 우식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은주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는 대화가 잘 통하고 친절한 현수의 사랑을 외면하고, 결국 카리스마 넘치지만 바람둥이 기질이 다분한 우식과의 위험한 사랑을 선택한다.

종잡을 수 없는 우식의 태도에 마음 한 켠 불안을 껴안고 살지만 은주 역시 자신의 마음을 접지 못한다. 두 사람은 난생 처음 하는 사랑에서 가슴 저림, 안타까움, 위태로움, 비밀스러움, 분노, 애틋함, 이해 등 모든 감정을 겪게 되고, 한층 더 성숙해지는 계기가 된다. <말죽거리 잔혹사>에는 1978, 순수한 교복세대의 가슴 시린 첫사랑이 있다.

시간이 지나 변했다고, 잊었다고 생각해도 어느날 문득 떠올라 저린 가슴을 느끼게 되는 것이 바로 첫사랑이다. 계산하지 않고 나의 모든 것을 걸고 사랑했기에 어리석음을 알면서도 미련을 쉽게 버릴 수 없다. 현수와 은주의 사랑을 보고 나면, 한참 동안 찾지 않았을 첫사랑이 잉 영화를 감상하면 떠 오른다

말죽거리 잔혹사 줄거리 & 결말

이소룡이란 홍콩 스타가 우리를 사로잡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내게도 이소룡은 최고의 우상이었다. 우리는 이소룡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도 금방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땐 그가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멋진 사나이였다. 그때 꿈이 하나 있었다면 바로 이소룡처럼 되고 싶다는 거였다. 사는 동안, 누구나 인생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시절이 있을 것이다. 내겐 1978년이 그런 해였다.

그해 봄 우리집은 강남으로 이사를 왔다. 강남의 땅값이 앞으로 엄청나게 오를 것을 예견한 어머니가 서둘러 결정한 일이었다. 내가 전학간 곳은 말죽거리 근방에 있는 정문고등학교였다. 나는 정문고의 악명을 어렴풋이 듣긴 했지만 그 소문이 제발 사실이 아니길 바랬다.

1978년 말죽거리의 봄, 현수(권상우)는 강남의 정문고로 전학온다. 정문고는 선생 폭력 외에도 학생들간 세력다툼으로 악명높은 문제학교. 이소룡 열혈팬이라는 이유로 금새 죽고 못사는 친구가 된 모범생 현수와 학교짱 우식(이정진). 하교길 버스안에서 올리비아 핫세를 꼭 닮은 은주(한가인)을 보고 동시에 반하는 현수와 우식. 하지만 은주는 다정한 현수보다 남자다운 우식에게 빠져든다.

한편, 학교짱 자리를 놓고 선도부장 종훈과 한 판 붙은 우식. 종훈은 비열한 방법으로 우식을 이기고, 우식은 그 길로 학교를 떠난다. 우식 없는 틈을 탄 종훈의 괴롭힘, 열반으로의 강등, 더해가는 선생들의 폭력, 게다가 은주마저 결국 우식을 택하자 현수의 분노는 폭발한다. 현수는 밤새 연습한 쌍절곤을 들고 학교 옥상으로 향하는데....

이 영화는 1978년 말죽거리의 한 고등학교로 전학 온 현수라는 남자아이의 성장기이다. 그는 ‘이소룡 키드’이다. 이소룡이라는 아이콘은 폭압적인 군사정권 하에서 사춘기를 보낸 현수와 같은 동시대의 십대들이 학교의 음울한 일상을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 탈출구였다.

혜성같이 나타났다 순식간에 사라진 이소룡의 삶과 그가 휘두르는 신기에 가까운 쌍절권의 파워, 그리고 마치 신비한 주문 같았던 그의 괴조음. 그 모든 것은 폭압적인 학교 생활을 견디는 판타지였다. 그가 비운의 죽음을 맞이한지도 이미 30년이 지났다. 하지만, 지금의 십대들에게도 ‘이소룡키드’ 는 발견된다.

이소룡은 세대를 초월하여 수많은 마니아를 이끌어왔다. 이소룡의 절권도는 오직 승리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이유로 주류 무도인의 입장에서 볼 때, 사도의 무술이었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은 그에게서 완전히 새로운 무술을 봤다. 이소룡 무술은 기존의 형식을 완전 해체한 자유롭고, 현대적인 무술이었다.

그리고 불의에 대응해 싸우는 대의명분이 있는 결투였다. 입시제도로 대표되는 억압 속의 십대들은 자유를 갈망하고, 이소룡과 같은 힘을 선망하게 된다. 즉 이소룡은 우리에게 자유이자 카타르시스다. 자유를 갈망하는 십대들이 존재하는 한, ‘이소룡’이라는 아이콘은 십대들의 가슴 속에 새로운 형태로 변형, 복제되어 영원히 존재하는 중장년층의 시대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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