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6월 민주항쟁 도화선이 된 열사의 31주기 '아로새겨진 1987'

기사승인 2018.01.14  07: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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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데일리 김민정 기자]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된 고문치사사건의 희생자 고(故) 박종철 열사 31주기를 앞두고 경찰, 유족, 영화인들이 고인을 기렸다.

박 열사 31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3일 이철성 경찰청장 등 경찰 지휘부는 이날 처음으로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 인권센터)을 찾아 박 열사를 추모했다. 박종철 열사는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으로 재학중이던 1987년 공안당국에 붙잡혀 취조실로 끌려갔다. 공안 당국은 박종철 열사에게 함께 학생운동을 하던 선배 박종운의 소재를 추궁했으나 끝까지 답하지 않았다. 박종철 열사는 경찰의 잔혹한 폭행과 전기고문, 물고문 등을 견디다 못해 1987년 1월14일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에서 22세의 아까운 나이로 생을 마감해야 했다. 한 대학생의 억울한 죽음은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고, 민주항쟁의 불씨를 일으켰다.

이날 경기북부지방경찰청 김기출 청장은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에 있는 고인의 묘소를 찾았다. 이는 경찰이 31년 만에 처음으로 박종철 열사를 공식 참배한 것이다. 김 청장은 이 자리에서 "고인의 명복을 빌며 아픈 과거를 반성하고 인권 경찰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같은 날 오후 서울대 인근 녹두거리의 관악구 대학5길 9 앞 골목에서는 이 길을 '박종철 거리'로 선포하는 행사가 열렸다. 31년 전 경찰 고문으로 숨진 고(故) 박종철 열사의 하숙집 맞은 편에 동판이 세워졌다. 동판 옆에는 기타를 치며 웃고 있는 박 열사와 그 뒤로 손을 맞잡은 친구들이 담긴 벽화가 그려졌다.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대학5길은 이제 '박종철 거리'다. 서울 관악구는 열사 사망 31주기(1월14일)를 맞아 하숙집이 있던 이 길을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민주화 시위가 끊이지 않던 당시 서울대 언어학과 학생회장이던 박 열사는 다른 학생들처럼 이 길 근처 막걸리 가게에서 술을 마시며 친구들과 사회 문제를 고민했다. 인근 골목은 때로 뒤를 쫓는 경찰을 피해 도망 다녔던 길이기도 하다.

행사를 주최한 관악구의 유종필 구청장은 "박 열사는 우리의 아픈 역사이자 자랑스러운 역사의 시작"이라며 "녹두거리는 1987년 당시의 역사가 아로새겨진 곳"이라고 박종철거리 선포의 의미를 설명하고, 박 열사의 기념관을 조성하는 사업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행사에 참석한 박 열사의 누나 박은숙 씨는 동생이 숨진 옛 남영동 대공분실이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박씨는 이 청장이 옛 대공분실을 시민에게 환원하라고 요구하는 시민단체와 협의하겠다는 소식을 듣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박종철 거리'에 대해서 누나 박 씨는 동판 제막식에 앞서 선포식 참석자들 앞에 서서 "종철이가 살던 길이나 한번 보려고 왔는데 그때와 너무 많이 변해 화려해졌다"며 "1987년에 이 길이 이런 모습이었다면 종철이가 새벽에 쥐도새도 모르게 끌려가지 않았을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심정을 얘기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영상 메시지를 통해 "(1987년) 6월의 정신이 30년 뒤 지금까지 이어져 촛불혁명을 만들었다"며 "더 높은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하자"고 독려했다.

영화인들 또한 박 열사의 묘소를 찾아 추모행렬을 이었다. 영화 '1987'의 장준환 감독과 스태프, 배우 김윤석, 강동원, 이희준, 여진구 등 약 30여 명도 이날 박 열사의 묘소를 찾았다. 박 열사의 친형인 박종부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와 가족들에게 인사한 후 묘소에 헌화하고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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