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편제, 블록버스터의 외형, 한국적 정서 가슴 뜨거운 영화

[코리아데일리 곽지영 기자]

한국 영화의 토속적인 아픔을 간직한 영화 ‘서편제’ 이 작품의 무엇이 가슴을 이토록 뜨겁게 만드는 것인가?

한이 어린 우리네 음악인 판소리가 이 영화에서는 놀랍게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뮤지컬의 근간인 발라드와 록에 녹아든 판소리는 한국인의 정서인 ‘한’을 쩌렁쩌렁하게 울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청준 작가의 원작이나 임권택 감독의 영화(1993)에 이르기 까지 ‘서편제’에서 ‘길’은 중요한 모티브다.

▲ 영화 서편제 스틸

인물들은 길에서 소리를 찾고, 길에서 헤어지고 상봉한다. 무려 50년의 세월이 다. 그 공간적, 시간적 한계를 수묵화 같은 영화로 풀어낸다. 겹겹이 이어붙인 한지 위로 투영되는 사계절 영상과 중앙의 회전무대가 그동안 우리네 음악을 이어온 숨가푼 갈등과 여정을 또렷이 드러내고 있다.

긴 여정 끝에 만난 남매가 채우는 마지막 소리가 강렬하다. 북 하나 세워놓고 마주 앉은 남매는 ‘심청가’ 중 ‘심 봉사가 눈뜨는 대목’을 부른다. 송화는 인생과 눈을 바쳐 얻은 자신의 소리를 사랑하는 동생 앞에 펼쳐놓는다. 한과 그리움이 절절하다.

이청준의 원작 ‘서편제’의 일부를 영화화한 이 작품은 임권택 감독이 한국 전통 예술에 관심을 가진 첫 영화이기도 하다. 말이 필요 없는 ‘국민영화’가 된 이 영화가 당대 사회에 미친 영향은 가히 신드롬이라 부를 만했다.

특히 ‘진도 아리랑’을 부르는 황톳길 위의 롱테이크는 전통예술을 한국적 미학으로 승화시키며‘한’의 영상미를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모두가 이 평가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서편제’가‘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를 내걸었던 당시 정부의 세계화 담론과 민족주의가 절묘하게 만난 가운데 탄생한 신드롬일 뿐이라는 평가도 동시에 존재했다.

판소리를 전문적으로 익힌 김명곤과 오정해의 연기와 지루하지 않게 관객들에게 판소리의 정서와 유봉이 송화를 눈멀게 하는 장면을 설득력 있게 전달한 플롯 구성력과 연출력, 그리고 무엇보다 이 영화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1993년에 ‘서편제’가 개봉했을 때, 대부분의 언론들은 서편제에 대해 한국의 소리와 혼을 형상화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대통령부터 야당 총재, 종교 지도자까지 거국적인 참여를 불러일으킨 ‘서편제’ 신드롬의 밑바탕에는, 결국 한국영화가 대한민국의 영화 흥행 정상에 섰으면 하고 바라는 일종의 범국민적인 공감대가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이청준 원작, 김명곤 각색, 임권택 감독의 영화. 정일성이 촬영하였다. 태흥영화사에서 제작하였고 1993년 4월에 단성사에서 개봉되었다. 이 영화는 관객 113만 명 이상을 동원하면서 한국영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는 평을 받았다. 서편제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960년대 초 전라도 보성 소릿재, 30대의 동호(김규철 역)는 소릿재 주막주인의 판소리 한 대목을 들으며 회상에 잠긴다. 소리품을 팔기 위해 어느 마을 대가집 잔치집에 불려온 소리꾼 유봉(김명곤 역)은 그곳에서 동호의 어미 금산댁을 만나 자신이 데리고 다니는 양딸 송화(오정해 역)와 함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동호와 송화는 오누이처럼 친해지지만 아기를 낳던 금산댁은 아이와 함께 죽고 만다. 유봉은 소리품을 파는 틈틈이 송화에게는 소리를, 동호에게는 북을 가르쳐 둘은 소리꾼과 고수로 한 쌍을 이루며 자란다.

그러나 소리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줄고 냉대와 멸시 속에서 살아가던 동호는 어미 금산댁이 유봉 때문에 죽었다는 생각과 궁핍한 생활을 견디다 못해 집을 뛰쳐나간다. 유봉은 송화 또한 떠나갈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소리의 완성에 집착해 약을 먹여 송화의 눈을 멀게 한다.

유봉은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는 송화를 정성을 다해 돌보지만 죄책감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결국 송화의 눈을 멀게 한 일을 사죄하고 숨을 거둔다. 유봉이 죽자 송화는 떠돌면서 소리를 하며 살아간다.

그로부터 몇년 후 그리움과 죄책감으로 송화와 유봉을 찾아나선 동호는 어느 이름없는 주막에서 송화와 만난다. 북채를 잡은 동호는 송화에게 소리를 청하고, 송화는 아비와 똑같은 북장단 솜씨인 그가 동호임을 안다. 그리고 그들은 또 다시 헤어짐의 길을 떠난다...

연출자인 임권택 감독은 “이청준의 원작소설은 우리 판소리의 정서를 잘 담아내고 있다. 원작을 바탕으로 남도의 아름다운 자연, 한을 맺고 푸는 사람들의 삶, 우리 소리의 느낌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영상을 그리고자 했다. 우리 판소리가 얼마나 뛰어난 예술 양식인지를 알리고 싶다.”라고 말했다.

또한 평론가들 역시 “가장 낮은 소리로 우리의 꿈은 이제 어떻게 되어 버렸는지, 우리의 정서는 이제 어떤 모양으로 변해버렸는지를 소리꾼 집안의 연대기적 서술로 그려내고, 영화 속의 힘은 고난과 만남에 의해 발동하고 혼을 일으키는 소리와 장”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한국 기네스 북에는 최다관객동원 영화로 기록되었다.

이 영화는 1993년 상해영화제 최우수감독상(임권택), 최우수 여우주연상(오정해), 제31회 대종상 최우수작품상·감독상, 제14회 청룡영화상 최우수작품상·남우주연상(김명곤), 제4회 춘사영화예술상 대상·작품상·감독상·여우주연상(오정해), 청룡영화제 최다관객상·대상·작품상·촬영상·신인여우상·남우주연상·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코리아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